2026년 5월 6일 03:30
830건이 3만3천 건이 된 이유: 계곡 불법시설 정비와 행정 신뢰의 시험대
계곡 불법시설 정비가 다시 국정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겉으로는 평상, 데크, 그늘막, 무단 경작 같은 시설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 쟁점은 더 큽니다. 국민 모두의 공간인 하천과 계곡을 누가 사적으로 점유해 왔는가, 그리고 행정은 왜 그동안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가입니다.
2026년 5월 6일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계곡 불법시설 정비와 관련해 여름 전까지 마지막 하나가 남을 때까지 정비하라는 취지로 강하게 주문했습니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당초 830여 건으로 파악했던 불법시설이 전국 재점검 결과 3만3천 건 이상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했습니다. 항공사진, 위성사진, AI 기술까지 동원한 전국 단위 조사의 결과였습니다.
830건에서 3만3천 건으로
숫자가 이렇게 커졌다는 것은 단속 대상이 갑자기 40배 생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거나, 보지 않았거나, 보고도 제대로 세지 않았을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행정안전부는 앞서 2026년 3월 26일 하천·계곡 및 주변지역 불법시설 정비 범정부 협의체(TF) 2차 회의를 열고 재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행정안전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재조사는 2026년 2월 국무회의 대통령 지시에 따라 3월 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됐습니다.
중간 점검 당시에도 변화는 이미 뚜렷했습니다. 동아일보 보도는 2026년 3월 24일 기준 불법 점용행위 7,168건, 불법시설 1만5,704곳이 적발됐고, 지난해 조사 당시 불법 점용행위 835건보다 약 8.6배 늘었다고 전했습니다. 시설 유형은 건축물, 경작, 평상, 그늘막·데크 등이 많았습니다.
이후 최종 집계가 3만3천여 건까지 늘었다면, 이번 조사의 의미는 단순한 실적 증가가 아닙니다. 행정이 조사 기준을 바꾸고, 공간정보를 활용하고, 현장 확인 방식을 정밀하게 바꾸면 오래된 관행이 얼마나 크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기술은 핑계가 아니라 도구였다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위성사진, 항공사진, AI 기술의 활용입니다. 하천구역과 계곡 주변은 사람이 일일이 걸어 다니며 확인하기 어렵고, 불법시설은 계절에 따라 설치됐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현장 담당자 몇 명의 기억과 민원 접수에만 의존하면 누락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공간정보를 활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방식 | 역할 |
|---|---|
| 위성·항공사진 | 하천구역 안팎의 건축물, 데크, 평상, 경작지 등 의심 지점 선별 |
| AI 판독 | 넓은 지역에서 반복 패턴과 변화 지점 탐지 |
| 모바일 현장 확인 | 인허가 대장과 실제 시설을 비교 |
| 국민 신고 | 행정이 놓친 반복 민원과 생활 현장 정보 보완 |
머니투데이 보도는 행안부가 위성·항공사진 등 국토공간정보를 활용해 불법 의심 시설 자료를 지방자치단체와 관계기관에 제공하고, 현장 공무원이 모바일 기기로 인허가 대장과 비교 확인하는 방식으로 누락 여부를 점검했다고 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이 행정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행정이 더 이상 “몰랐다”고 말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데이터가 있는 시대에는 복지부동도 기록으로 드러납니다.
전북 사례가 보여준 현장의 온도
전주MBC 보도는 이 문제가 왜 지역 현장에서 민감한지 잘 보여줍니다. 전주MBC 3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전북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6개월간 하천변 불법시설 단속 결과가 50건에 불과했지만, 대통령의 재조사 지시 이후 약 2주 만에 882건이 확인됐습니다.
무주 구천동 계곡에서는 물길 옆 평상, 울타리, 계단 같은 시설물이 확인됐고, 지자체마다 단속 건수를 세는 기준도 달랐습니다. 어떤 곳은 한 장소의 건물, 쉼터, 평상 등을 각각 숫자로 세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단속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행정 기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나의 위반으로 볼 것인지, 어디까지를 하천구역으로 볼 것인지가 통일되지 않으면 실태는 계속 흐려집니다.
전북 남원 사례는 더 심각했습니다. 전주MBC 4월 21일 보도는 남원시가 불법 펜션과 야영장을 단속하기는커녕, 세금으로 불법 시설을 위한 진입로 정비까지 해준 사실이 정부 합동감사에서 드러났다고 전했습니다. 행정안전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남원시에 기관 경고를 내리고, 관련 공무원 징계와 일부 공무원의 업무상 배임 혐의 고발을 예고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계곡 불법시설 문제는 단순한 무허가 평상 문제가 아닙니다. 공공재를 사적으로 점유한 사람, 그것을 묵인하거나 지원한 행정, 그리고 그 비용을 떠안은 시민의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과태료보다 이익이 크면 단속은 무력해진다
대통령이 형사처벌과 직무유기 수사를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불법시설로 얻는 수익이 과태료나 행정처분보다 크다면, 사업자는 버티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행정기관도 단순 계고와 과태료 부과만 반복하다가 여름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천 점용은 안전 문제이기도 합니다. 평상과 데크가 물길을 막으면 집중호우 때 유수 흐름을 방해하고, 무단 경작과 성토는 하천 지형을 바꿉니다. 불법 시설물이 단순히 보기 싫은 시설이 아니라 재난 위험을 키우는 구조물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경기도 사례는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보여줬습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는 2019년 9월부터 2021년 7월까지 25개 시·군 234개 하천·계곡에서 1,601개 업소의 불법 시설물 1만1,727개를 적발했고, 99.7% 복구를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에도 핵심은 철거 이후의 지속 단속이었습니다. 치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다시 설치되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철거가 아니라 제자연화가 목표
이번 회의 요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제자연화입니다. 시설물만 치우고, 평탄화된 땅이나 훼손된 물길을 그대로 두면 계곡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제자연화는 다음 단계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 불법 시설물 철거
- 콘크리트, 데크, 기초 구조물 제거
- 성토·평탄화된 지형 복원
- 훼손된 물길과 식생 회복
- 재설치 방지를 위한 상시 감시
말하자면 “평상을 치웠다”가 아니라 “물길이 돌아왔다”가 성과 지표가 되어야 합니다. 계곡은 장사를 위한 무대가 아니라 물이 흐르고 사람이 쉬는 공공의 자연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단속과 지원을 같이 해야 하는 이유
다만 모든 현장을 같은 칼로 자를 수는 없습니다. 생계형 시설, 오래된 관행, 지역 관광 구조가 얽힌 곳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단속 일변도가 아니라 지방정부와 협력하고, 협조적인 곳은 정상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책은 두 줄로 가야 합니다.
| 대상 | 대응 |
|---|---|
| 반복·상습·영리형 불법 점유 | 원상복구 명령, 변상금, 고발, 행정대집행 |
| 자진철거·전환 의지가 있는 지역 | 공영 주차장, 공동 판매장, 합법 영업 전환, 지역 관광 지원 |
경기도의 과거 청정계곡 사업도 자진철거 지역에 편의시설 등 지원책을 병행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는 2019년 경기도가 25개 시·군 176개 하천에서 적발된 불법행위 1,392곳 중 1,021곳을 철거했고, 자진철거 지역에 지원책을 마련했다고 전했습니다. 처벌만으로는 지역의 저항을 키울 수 있고, 지원만으로는 불법을 보상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투명해야 합니다.
민원은 보물창고라는 말
이번 회의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민원에 대한 태도입니다. 대통령은 민원을 귀찮은 업무가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소중한 목소리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언론이나 야당이 문제를 지적하면 고맙게 생각해야 하며, 민원 형태로 제기되는 의견도 “보물창고”처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복 민원은 대개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
- 설명이 부족하다
- 해결이 안 됐다
- 담당 기관이 서로 미룬다
따라서 반복 민원을 줄이려면 “민원인을 설득했다”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해결 또는 불가 사유를 문서로 남겼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게 제도를 바꿨다”까지 가야 합니다. 계곡 불법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오랫동안 민원을 넣었지만 현장이 그대로였다면, 그것은 민원인의 집요함이 아니라 행정의 미완료 상태를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지표
이번 단속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다음 지표가 공개되어야 합니다.
- 3만3천여 건 중 자진철거, 행정대집행, 고발, 원상복구 완료 비율
- 중점관리 대상지역과 재설치 적발 건수
- 하천구역 내 경작·데크·건축물 등 유형별 정비 속도
- 지자체별 누락 여부와 감찰 결과
- 생계형 전환 지원 예산과 실제 지원 대상
- 제자연화 완료 지역의 사후 관리 결과
국민이 체감하는 행정 신뢰는 거창한 구호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작년에 835건이라고 했던 일이 올해 3만3천 건으로 바뀌었다면, 정부는 왜 그 차이가 생겼는지 끝까지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없어졌는지, 여름이 지나고 내년에도 다시 생기지 않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계곡 불법시설 정비는 작은 정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국토는 모두의 것이라는 원칙, 공무원의 책임, 기술을 활용한 행정, 민원을 대하는 태도, 단속과 지원의 균형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안은 단순한 계곡 정비가 아니라 행정이 국민 앞에서 스스로를 다시 점검하는 시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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